부부
긴 상이 있다
한 아름에 잡히지 않아 같이 들어야 한다
좁은 문이 나타나면
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 하고 걸어야 한다
뒤로 걷는 사람은 앞으로 걷는 사람을 읽으며
걸음을 옮겨야 한다
잠시 허리를 펴거나 굽힐 때
서로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
다 온 것 같다고
먼저 탕 하고 상을 내려놓아서도 안 된다
걸음의 속도도 맞추어야 한다
한 발
또 한 발
- 함민복 -
추석을 앞두고 고향생각을 하다보니 육지 갔던 첫째가 내려왔다고 한 상 가득 차려주시던 밥상이 떠올랐습니다. 바둑판처럼 반찬접시들이 빽빽이 놓인 상을 둘이서 들고 조심조심 오던 모습은 명절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입니다.
이제 곧 추석입니다. 오랜 선조들이 추석을 만들고, 지금껏 기념하며 내려오고 있는 이유는 “감사”와 “누림”을 담아내고 싶었기 때문일겁니다. 농경사회에서서로의 노고를 치하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제는 가장 부담스러운 날이 되어버렸습니다. 명절에 고향을 방문하고, 만나고, 웃고, 떠들고, 먹고, 헤어지는 날이 이제는 가장 가고 싶지 않은 날, 가장 피하고 싶은 날이 되어버렸습니다. 매번 하던대로 편하게 앉아서 명절밥상을 받아먹는 이들에게나 그저 행복한 날이 되어버렸습니다.
올 추석에는 감사와 누림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위해 취직은 했는지, 결혼할 계획은 있는지, 아이는 언제 낳을 건지, 살은 언제 뺄 건지 등의 남의 인생에 과도하게 간섭하는 일을 적어도 푸른이들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밥상을 같이 들어주고, 설거지를 도와주고, 말없이 아무도 못 보게 취업못한 조카에게 용돈을 쥐어 주는 것, 그게 진정한 관심이 아닐까요.
명절이라는 것에 너무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당연한 기대 속에서 강요된 희생과 인내를 덜어내고, 좀더 예의를 갖춰서 대한다면, 모두에게 잔잔한 감동과 정겨움이 있는 추석이 될 것 같습니다. 푸른이여러분, 잘 다녀오십시오!
부부
긴 상이 있다
한 아름에 잡히지 않아 같이 들어야 한다
좁은 문이 나타나면
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 하고 걸어야 한다
뒤로 걷는 사람은 앞으로 걷는 사람을 읽으며
걸음을 옮겨야 한다
잠시 허리를 펴거나 굽힐 때
서로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
다 온 것 같다고
먼저 탕 하고 상을 내려놓아서도 안 된다
걸음의 속도도 맞추어야 한다
한 발
또 한 발
- 함민복 -
추석을 앞두고 고향생각을 하다보니 육지 갔던 첫째가 내려왔다고 한 상 가득 차려주시던 밥상이 떠올랐습니다. 바둑판처럼 반찬접시들이 빽빽이 놓인 상을 둘이서 들고 조심조심 오던 모습은 명절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입니다.
이제 곧 추석입니다. 오랜 선조들이 추석을 만들고, 지금껏 기념하며 내려오고 있는 이유는 “감사”와 “누림”을 담아내고 싶었기 때문일겁니다. 농경사회에서서로의 노고를 치하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제는 가장 부담스러운 날이 되어버렸습니다. 명절에 고향을 방문하고, 만나고, 웃고, 떠들고, 먹고, 헤어지는 날이 이제는 가장 가고 싶지 않은 날, 가장 피하고 싶은 날이 되어버렸습니다. 매번 하던대로 편하게 앉아서 명절밥상을 받아먹는 이들에게나 그저 행복한 날이 되어버렸습니다.
올 추석에는 감사와 누림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위해 취직은 했는지, 결혼할 계획은 있는지, 아이는 언제 낳을 건지, 살은 언제 뺄 건지 등의 남의 인생에 과도하게 간섭하는 일을 적어도 푸른이들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밥상을 같이 들어주고, 설거지를 도와주고, 말없이 아무도 못 보게 취업못한 조카에게 용돈을 쥐어 주는 것, 그게 진정한 관심이 아닐까요.
명절이라는 것에 너무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당연한 기대 속에서 강요된 희생과 인내를 덜어내고, 좀더 예의를 갖춰서 대한다면, 모두에게 잔잔한 감동과 정겨움이 있는 추석이 될 것 같습니다. 푸른이여러분, 잘 다녀오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