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공간

Live Church, Live Community

Home  >  소통공간  >  목회칼럼

글로 떠나는 성지순례 1_순례와 여행 사이

박규남
조회수 28

3주전 성지순례 전문여행사(소울트립)에서 진행한 성지순례체험단 모집 이벤트가 있었습니다. 신청을 하였고, 제가 당당하게(?) 1차 30명에 뽑혔습니다. 3차까지 최종 10명을 뽑는다고 합니다. 현재 이스라엘에서 가고 싶은 성지를 조사해서 올리는 미션을 수행 중입니다. 다듬지 않은 글이지만, 함께 올려봅니다. 저만큼이나 푸른이여러분에게도 성지순례를 가고싶은 마음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역사의 시작은 언제나 우리의 마음에서 시작되니 말이지요.

====================


성지순례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드는 마음이 있다. “순례와 여행은 어떻게 다를까?”, “성지순례와 성지여행은 무엇이 다를까?” 더군다나 이스라엘은 중동의 화약고와 같은 곳이니, 떠나는 마음은 더 남다를 수밖에 없다. 일정이 편할수록 순례자의 마음은 약해지겠지만, 일정에 어려움이 있을수록 순례자의 마음이 강해질 것이다. "아, 순례자의 삶이 이런 것이구나!"


관광객으로 길을 나서게 되면, 일정에 차질이 생기는 순간 큰일난다. 관광객은 일정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일정이 취소되거나, 일정이 변경되거나, 일정이 늦어지거나, 일정이 마음에 안 들면 금새 불평이 쏟아진다.


하지만 순례자에게는 일정이 중요하지 않다. 순례자는 일정을 만드는 사람이다. 일정이 취소되거나, 변경되거나, 늦어지거나, 탐탁치않게 되는 것은 또 다른 순례의 길에 서는 싸인이 될 뿐이다. 그가 걷는 길이 일정이 되는 사람, 생각만 해도 멋있다. 참 멋있고, 참 근사하다.


몸은 성지에 있어도 함께 그 길을 걷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것은 순례가 아닐 것이다. 순례라 하면서 일정에 매여 걷는 것도 순례가 아니다. 순례라 하면서 그 하루를 돌아보는 데 인색하다면 그 또한 순례가 아니다. 순례라 하면서 소위 '은혜받음', '감동받음'만을 추구하는 것 역시 순례가 아니다. '은혜받음'이라는 것이 어쩌면 또 다른 우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성지순례는 분명 은혜를 느끼고자 떠나는 길이다. 하지만 그 은혜는 ‘사소한’ 시간, ‘하찮은’ 시간, ‘불편한’ 시간을 걸으며 겸손히 나를 돌아보고 나서야 찾아온다. 아무 노력과 행함없이 감정의 울림과 북받침을 원하는 것은 우상숭배에 다르지 않다. 하나님은 나의 은혜받음보다 크시다. 하나님의 나의 감정선보다 크시다. 하나님은 내 기분보다 크시다. 


과거의 순례는 걷기였다. 그래서 걸음을 당연시했다. 하지만 오늘의 순례는 걸음을 당연시하지 않는다. 속도와 밀도가 우선이다. 얼마나 많은 곳을 가 봤느냐가 중요하다. 성지순례도 그렇게 되기가 쉬울 것이다. '이왕이면'이라는 명분아래, 순례도 하고, 관광도 하고, 쇼핑도 하고... 마치 두 주인을 섬기듯이. 


또 순례자는 서로의 동무임과 동시에 순례길의 자극제였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서로를 소비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 내가 가진 걸 쏟아내고 허비하게 하는 소비의 대상. 순례는 나를 주님을 채우겠다고 떠난 여정인데, 온통 쏟아내고 돌아오는 길이 된다. 내 자랑, 취미, 관심사, 신변잡기 ... 


주님으로 채우는 순례여행이 기대된다. 나는 작아보이고, 주님만 커 보이는 여행, 역사의 흔적 속에서 먼저 그 길을 걸었던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동시대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이 소중하게 여겨지는 여행, 그리고 그 길을 걸어갈 이들을 소망하는 여행이 되기를 바라고 품어본다.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