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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이 또다시 나를 살리다

박규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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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사도는 사도행전 20장 28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이 구절에 대한 한 청교도의 강해가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오, 그렇다면 우리가 의욕이 없고 무관심해진다고 느낄 때마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것을 듣자. 내가 그들을 위해 죽었다면, 너는 그들을 돌보아야 하지 않겠느냐? 그들이 내 피를 흘릴 가치가 있다면, 네가 수고할 가치가 있지 않겠느냐? 내가 잃어버린 자들을 찾고 구원하기 위햐ㅐ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왔다면, 너는 이웃집이나 거리나 마을로 가서 그들을 찾아야 하지 않겠느냐? 내 수고와 겸손에 비하면 네 수고와 겸손은 얼마나 보잘 것 없느냐? 내가 친히 여기까지 낮추었는데, 너에게 그런 책임이 맡겨진 것이 얼마나 영예로운 일이냐? 내가 그들을 구원하려고 그토록 많은 일을 하고 고통을 당하지 않았느냐? 내가 기꺼이 너를 나의 동역자로 삼았다면, 네가 미력이라도 아끼겠느냐?”(리처드 벡스터, 『참 목자상』, 생명의말씀사)


글을 읽으며 두 가지에 놀랐습니다. 말씀의 행간에 담긴 주님의 마음을 이토록 절절하게 발견한다는 사실에 놀랐고, 사역자의 삶이 어떤 것인지 무뎌진 제 모습에 놀랐습니다. 어려울 땐 어려움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서운해한 모습은 그저 징징거림이었고, 살만할 땐 설교를 해도 변하지 않는다고 푸념하는 모습은 그저 철없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동안 사역했던 교회에서 뵈었던 교우분들은 자기 일이 좋아서 하는 분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실패에 실패를 반복하다가 간신히 자리 잡은 일터인 분도 계셨고, 또 여기서만은 자식들 클 때까지는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직장생활 해 봤다고, 일터사역에 대해 오랫동안 훈련을 받아왔다고 훈수 아닌 훈수를 두었습니다. 그저 직장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는 말만 던지고 제 할 일을 다 한 것처럼 여겼습니다. 그러다 그분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나니 그 지극히 합당한 말이 참 공허하게 들렸습니다. 


반면 저는 좋아하는 일 하면서 먹고 살며, 수고하신다는 격려도 듣고, 좋은 일 거룩한 일 값진 일 하신다고 부러움도 사면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분들에게는 복음을 믿는 데는 대가가 따른다고 말했지만, 제가 치르고 있는 대가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것도 큰 찔림이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오롯이 전했고, 나름 복음을 윤색하지 않고 돌직구로 전했다고 대견해하기까지 했지만, 그 삶을 내가 얼마나 살아내고 있는지를 살펴보니 민망하기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에스더를 시작하며, 5월에는 말씀과 더불어 예수님의 삶을 깊이 묵상하며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합니다. 활동으로 바쁜 목사가 아닌, “목사님 바쁘신대”라는 말을 칭찬으로 여기지 않는 목사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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