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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을 남겨두어야 사람이 된다

박규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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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말라야의 최고봉은 영국 측량기사의 이름을 따 에베레스트라고 하지만 이 곳 네팔이나 티베트에서는 예부터 ‘큰 바다의 이마’(사갈고트) 또는 ‘세계의 여신’(초모랑마)이라 불러 왔습니다.높고 성스러운 뜻을 담고 있습니다.이 곳 사람들은 정상에 오르는 일이 없습니다. 그 곳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경외의 대상입니다. 두려움을 남겨두어야 사람이 된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더구나 그 곳은 사람이 살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곳을 오르는 것은 없어도 되는 물건을 만들거나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농락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산의 높이를 숫자로 계산하는 일도 없습니다.하물며 정상을 그 산맥과 따로 떼어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산맥이 없이 정상이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네팔에 오면 먼저 히말라야의 이야기를 들어야 합니다.등산장비를 지고 히말라야의 어느 정상을 오르거나 래프팅을 즐기기 위해 계곡의 급류를 찾아가기 전에 히말라야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에 겸손히 귀기울여야 합니다.모험과 도전이라는 ‘서부행(西部行)’에 나서기 전에 먼저 어둠과 별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합니다.그리고 생각해야 합니다.

                                                 - 신영복, <희말라야 산기슭에서> - 


故신영복 교수의 글은 읽는 이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도록 도와줍니다. 자신의 생각을 난폭하게 강요하지 않고, 두려움을 심어주며 받아들이게 만들지도 않습니다. 부드러운 봄바람처럼 우리의 감각을 살려주고 난 후에, 제대로 생각하도록 돕습니다. 세계를 돌며 짬짬히 기록헸던 글들을 신문에 연재하였습니다. ”아, 여행은 이렇게 하는 것이구나!“  감탄을 했었습니다. 오래전,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유홍준)를 들고 무작정 여행을 떠나고 싶었을 때처럼, 그의 글도 그렇게 저를 충동했습니다.


정상에 오르는 것을 ”없더도 되는 물건을 만들거나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농락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하는 그의 말이 어떻게 다가오시나요? 역사 이래 탐험과 모험, 도전과 정복은 언제나 가장 인간다운 것으로 여겨졌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것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벌어진 일은 무엇일까요?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이 정복의 대상이 되어버렸습니다. 먼저 깃발을 꽂으려고, 앞다투어 달려갈 뿐입니다. 그러다보니 인간의 존엄을 느끼고, 인간보다 더 큰 존재를 만나고 대하는 신비가 사라졌습니다. 신비가 사라지니 경외심도 메말랐습니다. 그저 분석과 전략만 남았습니다.


그래서인지 ”두려움을 남겨두어야 사람이 된다“는 옛말이 큰 울림을 줍니다. 히말라야 주변에 사는 사람들에게 히말라야는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경외의 대상이라는 말에 옷매무새를 고치게 됩니다. 모든 것이 정복의 대상이고, 쟁취의 대상이 된 시대를 살다보니, 하나님마저도 그렇게 대하고 있지는 않는지 되묻게 됩니다.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은 전혀 없고, 그분마저도 정복하고 취해야 하는 대상으로 여기고 있지는 않는지요. 경외심으로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요구와 욕망을 채우기 위한 기도와 예배가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요. 그래서 ”이렇게 하니, 이렇게 해주시더라“는 간증이 환영받고, 하나님을 일종의 법칙처럼 이해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하나님도, 사람도, 자연도 진실함과 애정으로 대해야 합니다. 사람은 모름지기 경외의 대상을 남겨두어야 합니다. ”아!“하는 감탄과 경외심이 우리를 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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