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간부터 새로운 업체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6개월가량을 쉬었던 탓에 머뭇거려졌습니다. 늘 하던 일이었고, 어렵지 않았던 일이었고, 더 있었으면 하는 일이었는데, 지난 주간의 감정은 ‘좀 더 있다 해야하지 않을까’, ‘좀 더 점검해야하지 않을까’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잘 될까?’, ‘괜찮을까?’, ‘잘한 선택일까?’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지금, 무엇이 두려우신가요? 두려운 사람에게는 크건 작건 모든 게 다 걱정거리가 되겠지요. 제자들을 부르신 예수님을 생각해보는 한주였습니다. ‘참 대책없이 부르셨구나’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교회의 직분자나 운영위원을 세웠다면 “목사님, 참 대책없이 사람 세우신다”라는 말 듣기 딱 좋은 그런 모습이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람들이 염려하고 신경쓰는 것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건 암것두 아니야. 그건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는거야” 하셨습니다. “그러니 너도 쓸데없는 걱정 하지말고, 내 곁에만 있으렴” 하셨습니다.
『모르고 사는 즐거움』(어니 J. 젤린스키, 중앙M&B)이라는 책 제목이 재미있어 눈으로 훓어보다 재미있는 구절을 만났습니다. 심리학자인 젤린스키는 “걱정의 40%는 절대 현실로 일어나지 않고, 걱정의 30%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고, 걱정의 4%는 우리 힘으로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고, 걱정의 4%는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의 요지는 현대인들은 걱정을 해봐야 소용없는 것들을 걱정하며 자신의 창조적인 에너지를, 자신의 생명력을 소비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요즘 우리가 하고 있는 걱정에 그의 말을 적용해보았습니다. 두려움거리도 아닌, 걱정거리도 아닌, 봄에 맞는 봄옷으로 옷을 갈아입고 산뜻해하듯, 우리의 창조적인 에너지와 생명력을 드러내고 뽐낼만한 일이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삶에 실수가 없을 수가 있을까요? 또 실수가 커서 실패했다고 할만한 시기도 있겠지요. 하지만 우리를 신뢰해주시고, 사랑하며 축복해주시는 하나님은 전혀 문제삼지 않을 일입니다.
우리의 방향이 그분을 향하고 있는 한, 그 하나님나라를 흉내라도 내려고 하는 한, 기회는 또다시 주어질 것이고, 무한한 사랑과 은총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세상은 성공이라는 푯대를 보여주며 우리를 부추기고 몰아가지만, 하나님은 다르십니다. 성공이 아니라, “생명을 충분히 누리며 살아라”, “너의 생명으로 다른 생명을 품어라”, “너의 삶엔 대책이 있다” 하십니다.
우리의 신앙과 삶이 그런 두려움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기쁘면 좋겠습니다. 긴 겨울을 지나 다시 꽃을 피우는 새봄처럼 말이지요. 그러니 겨울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애써 가꾼 열매를 내주고, 나뭇잎을 떨어뜨리는 것을 겁내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놀랍고 새로운 생명과 은총의 세계로 우리를 이끄실 것입니다.
참신앙은 한방을 터트리는 게 아닙니다. 참신앙은 건강한 일상의 기반을 만드는 것이고, 또한 하나님나라를 우리 가까이 불러내는 것입니다. 개인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전체를 생각하는 삶을 지향합니다. 오늘에 성실하되, 내일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대립각을 세우는 많은 문제를 이해관계로 보지 않고, 공생과 공존의 눈으로 봅니다. 할 수 없는 것에 기죽지 말고, 할 수 있는 것에, 해야하는 것에 마음을 두며 새봄처럼 생기를 흘러내는 푸른이가 되시기를 손모아 축원합니다.
지난 주간부터 새로운 업체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6개월가량을 쉬었던 탓에 머뭇거려졌습니다. 늘 하던 일이었고, 어렵지 않았던 일이었고, 더 있었으면 하는 일이었는데, 지난 주간의 감정은 ‘좀 더 있다 해야하지 않을까’, ‘좀 더 점검해야하지 않을까’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잘 될까?’, ‘괜찮을까?’, ‘잘한 선택일까?’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지금, 무엇이 두려우신가요? 두려운 사람에게는 크건 작건 모든 게 다 걱정거리가 되겠지요. 제자들을 부르신 예수님을 생각해보는 한주였습니다. ‘참 대책없이 부르셨구나’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교회의 직분자나 운영위원을 세웠다면 “목사님, 참 대책없이 사람 세우신다”라는 말 듣기 딱 좋은 그런 모습이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람들이 염려하고 신경쓰는 것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건 암것두 아니야. 그건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는거야” 하셨습니다. “그러니 너도 쓸데없는 걱정 하지말고, 내 곁에만 있으렴” 하셨습니다.
『모르고 사는 즐거움』(어니 J. 젤린스키, 중앙M&B)이라는 책 제목이 재미있어 눈으로 훓어보다 재미있는 구절을 만났습니다. 심리학자인 젤린스키는 “걱정의 40%는 절대 현실로 일어나지 않고, 걱정의 30%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고, 걱정의 4%는 우리 힘으로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고, 걱정의 4%는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의 요지는 현대인들은 걱정을 해봐야 소용없는 것들을 걱정하며 자신의 창조적인 에너지를, 자신의 생명력을 소비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요즘 우리가 하고 있는 걱정에 그의 말을 적용해보았습니다. 두려움거리도 아닌, 걱정거리도 아닌, 봄에 맞는 봄옷으로 옷을 갈아입고 산뜻해하듯, 우리의 창조적인 에너지와 생명력을 드러내고 뽐낼만한 일이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삶에 실수가 없을 수가 있을까요? 또 실수가 커서 실패했다고 할만한 시기도 있겠지요. 하지만 우리를 신뢰해주시고, 사랑하며 축복해주시는 하나님은 전혀 문제삼지 않을 일입니다.
우리의 방향이 그분을 향하고 있는 한, 그 하나님나라를 흉내라도 내려고 하는 한, 기회는 또다시 주어질 것이고, 무한한 사랑과 은총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세상은 성공이라는 푯대를 보여주며 우리를 부추기고 몰아가지만, 하나님은 다르십니다. 성공이 아니라, “생명을 충분히 누리며 살아라”, “너의 생명으로 다른 생명을 품어라”, “너의 삶엔 대책이 있다” 하십니다.
우리의 신앙과 삶이 그런 두려움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기쁘면 좋겠습니다. 긴 겨울을 지나 다시 꽃을 피우는 새봄처럼 말이지요. 그러니 겨울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애써 가꾼 열매를 내주고, 나뭇잎을 떨어뜨리는 것을 겁내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놀랍고 새로운 생명과 은총의 세계로 우리를 이끄실 것입니다.
참신앙은 한방을 터트리는 게 아닙니다. 참신앙은 건강한 일상의 기반을 만드는 것이고, 또한 하나님나라를 우리 가까이 불러내는 것입니다. 개인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전체를 생각하는 삶을 지향합니다. 오늘에 성실하되, 내일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대립각을 세우는 많은 문제를 이해관계로 보지 않고, 공생과 공존의 눈으로 봅니다. 할 수 없는 것에 기죽지 말고, 할 수 있는 것에, 해야하는 것에 마음을 두며 새봄처럼 생기를 흘러내는 푸른이가 되시기를 손모아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