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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비뚤어진 걸까?

박규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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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빈둥거리는 모습에 화가 난 아버지가 말했다. 

“어디에 갔었냐?”

“아무 데도 가지 않았어요.”

“왜 집에서 빈둥거리고 있냐? 학교에 가서 선생님 앞에서 과제물 암송하고, 책가방을 열고, 점토판에 필기 연습 열심히 하고, 선배들한테 쓰는 법 잘 배워라. 숙제 다하면 선생님께 반드시 검사받고 와라. 제발 좀 거리에서 방황하지 말고. 알겠냐?”

“네. 나중에 말씀 드릴께요.”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아니다, 지금 말해라.”

“나중에 말씀 드릴께요.”

“그냥 지금 말해라.”

“나중에 말씀드릴께요.”

“지금 말하래두. 이제 철 좀 들어라. 공공장소에서 서성거리지도, 길에서 배회하지도 마라. 길을 걸을 때는 두리번거리지 좀 마라. 제발 인간이 되라. 선생님 무서운 줄 좀 알고. 그렇게 놀고도 인생이 성공할 거 같냐? 내가 부끄러워서 얼굴을 못 들겠다. 친척네 다 둘러봐도 너 같은 놈이 없다. 징징거리지 좀 말고. 내가 너더러 돈 벌어 오라고 원양어선에 보내길 했냐, 들판에 나가 일하라고 했냐, 그렇다고 날 부양하라고 했냐? 이게 다 널 위하는 거다!”

-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서양고대사』, 정기문, 책과함께



읽다가 한참을 웃었습니다. 2,000년전의 대화였기 때문입니다. 번역문이 너무 이상해서 제가 조금 각색하기는 했지만, 실제로 기원전 2,000년경 수메르 토기 조각을 해석한 글입니다. 요즘으로 치면 방탕한 아들에 대해 탄식하는 아버지의 글입니다. 에세이의 제목도 “필경사와 그의 비뚤어진 아들”입니다. 2천년전 수메르에서 필경사는 대단히 전문적인 직업이고 지식인이었습니다. 당시의 풍습처럼 아버지의 직업이 아들이 물려받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으니, 이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을 학교에 보내 공부를 시켰을겁니다. 그런데 요놈(?)이 공부를 안 합니다. 그 아들에 대한 한탄이 점토판에 140줄이나 빼곡하게 적혀있습니다. 


거리에서 방황하고, 광장에서 어슬렁거리고, 집에서 빈둥거리는 게 뭘 그렇게 잘못한 걸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비뚤어진 아들이라고 할 정도인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내용을 보니 2천년전 필경사학교의 교육방식은 매우 폭력적이었다고 합니다. 무조건 암기해야하고, 제대로 못하면 몽둥이로 흠씬 두들겨맞았다고 합니다. 아마도 매맞는 걸 견디지 못해 학교수업을 빠지고 무단결석을 자주 했나봅니다. 2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인류가 진보하는 게 맞는 말인지 의문이 생깁니다. 그나 저나 누가 비뚤어진 걸까요? 아버진가요, 아들인가요, 아니면 세상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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