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사상은 강함보다는 부드러움을 사랑합니다. “물 흐르듯이”, “바람이 불듯이”, “구름이 흘러가듯이” 이런 표현들은 우리의 문화나 전통사상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움이 단단함을 이긴다”(弱之勝强 柔之勝剛)는 노자의 말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드러움의 상징으로 물을 칭송합니다. “천하의 부드럽고 약한 것으로 물만한 것이 없고, 단단하고 강한 것을 공격하는 것으로 물을 넘어서는 것이 없다”
모두 힘을 갈망합니다. 즉각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누르고 강제하는 힘은 당장은 이길 것 같고, 또 이긴 것 같고, 뭔가를 이룰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지요. 강함의 상징인 전쟁은 오히려 세상을 처절하게 망가뜨리고, 그 본인마저도 비인간, 몰인간으로 내몹니다. 힘은 언제나 더 큰 힘에 중독되게 되어 있습니다. 더 큰 힘을 가질수록 더 황폐해지고, 더 폭력적이 됩니다. 그래서 역사가 말해주는 진실은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진리가 아니었던가요.
예수님이 보여주신 힘은 다른 종류의 힘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건사하시는 힘도 다른 종류의 힘입니다. 바로 부드러움의 힘, 사랑의 힘입니다. 부드러움으로 비정함을 이기고, 사랑으로 강함을 이기십니다. 부드러움은, 사랑은 더 가지면 가질수록 그를 살아나게 합니다. 충만해집니다. 이솝우화 “해와 바람”이야기처럼 부드럽고 따뜻한 기운으로 녹여내는 것, 그것이 진짜 강한 힘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그러한 분이십니다. 늘 그 편을 향하고 계십니다. 우리 신앙의 중심도 그 곳에 자리해야 합니다. 수와 크기를 앞세우는 것, 하나님의 방식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기드온에게 미디안을 상대할 군사가 너무 많다고 하신 분,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혼란스러운 세상입니다. 서로 강한 힘으로 상대를 정복하고 굴종케 만들려는 세상입니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할 수만 있다면 더 부드럽고(질서로 혼란을 이기도록), 따뜻하고(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이기도록), 친절해야(환대로 비정함을 이기도록)합니다. 변화를 줄 수 있는 것은 제압이 아니라 수용이니까요. 내 편의 사람으로 만들고, 더 아름답고 좋은 세상을 만드는 건, 따뜻한 이해와 자상한 배려입니다. 주인 몰래 도망친 오네시모를 변화시킨 것, 인과응보의 마음으로 갚아주고 싶었던 빌레몬을 변화시킨 것, 바로 간곡함과 정중함을 담은 바울의 정성스런 편지였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힘이 커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커지는 것입니다. 마음의 그릇이 커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커진 그릇에 큰 힘을 담는 것도 안전해집니다. 마음의 그릇이 커지지 않으면 마음에 담은 것들이 우리를 압도해 버립니다. 그래서 끌려가는 것이지요. 그래서 사는 것을 넘어서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그저 사는 대로 생각할 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런데 속이 점점 좁아진다면, 욕심이 점점 커진다면, 매우 현실적인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면, 하나님을 잘못 알고있는 겁니다. 겨울을 또다시 품어내는 봄, 그 봄을 맞으며, 혼란스러운 세상을 품어낼 품이 넓은 사람, 마음의 그릇이 큰 사람, 더 큰 힘에 중독되지 않고 따뜻함으로 혼란을 이겨내는 사람을 꿈꿉니다. 그가 나타나기를.. 내가 되기를..
동양의 사상은 강함보다는 부드러움을 사랑합니다. “물 흐르듯이”, “바람이 불듯이”, “구름이 흘러가듯이” 이런 표현들은 우리의 문화나 전통사상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움이 단단함을 이긴다”(弱之勝强 柔之勝剛)는 노자의 말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드러움의 상징으로 물을 칭송합니다. “천하의 부드럽고 약한 것으로 물만한 것이 없고, 단단하고 강한 것을 공격하는 것으로 물을 넘어서는 것이 없다”
모두 힘을 갈망합니다. 즉각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누르고 강제하는 힘은 당장은 이길 것 같고, 또 이긴 것 같고, 뭔가를 이룰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지요. 강함의 상징인 전쟁은 오히려 세상을 처절하게 망가뜨리고, 그 본인마저도 비인간, 몰인간으로 내몹니다. 힘은 언제나 더 큰 힘에 중독되게 되어 있습니다. 더 큰 힘을 가질수록 더 황폐해지고, 더 폭력적이 됩니다. 그래서 역사가 말해주는 진실은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진리가 아니었던가요.
예수님이 보여주신 힘은 다른 종류의 힘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건사하시는 힘도 다른 종류의 힘입니다. 바로 부드러움의 힘, 사랑의 힘입니다. 부드러움으로 비정함을 이기고, 사랑으로 강함을 이기십니다. 부드러움은, 사랑은 더 가지면 가질수록 그를 살아나게 합니다. 충만해집니다. 이솝우화 “해와 바람”이야기처럼 부드럽고 따뜻한 기운으로 녹여내는 것, 그것이 진짜 강한 힘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그러한 분이십니다. 늘 그 편을 향하고 계십니다. 우리 신앙의 중심도 그 곳에 자리해야 합니다. 수와 크기를 앞세우는 것, 하나님의 방식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기드온에게 미디안을 상대할 군사가 너무 많다고 하신 분,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혼란스러운 세상입니다. 서로 강한 힘으로 상대를 정복하고 굴종케 만들려는 세상입니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할 수만 있다면 더 부드럽고(질서로 혼란을 이기도록), 따뜻하고(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이기도록), 친절해야(환대로 비정함을 이기도록)합니다. 변화를 줄 수 있는 것은 제압이 아니라 수용이니까요. 내 편의 사람으로 만들고, 더 아름답고 좋은 세상을 만드는 건, 따뜻한 이해와 자상한 배려입니다. 주인 몰래 도망친 오네시모를 변화시킨 것, 인과응보의 마음으로 갚아주고 싶었던 빌레몬을 변화시킨 것, 바로 간곡함과 정중함을 담은 바울의 정성스런 편지였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힘이 커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커지는 것입니다. 마음의 그릇이 커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커진 그릇에 큰 힘을 담는 것도 안전해집니다. 마음의 그릇이 커지지 않으면 마음에 담은 것들이 우리를 압도해 버립니다. 그래서 끌려가는 것이지요. 그래서 사는 것을 넘어서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그저 사는 대로 생각할 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런데 속이 점점 좁아진다면, 욕심이 점점 커진다면, 매우 현실적인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면, 하나님을 잘못 알고있는 겁니다. 겨울을 또다시 품어내는 봄, 그 봄을 맞으며, 혼란스러운 세상을 품어낼 품이 넓은 사람, 마음의 그릇이 큰 사람, 더 큰 힘에 중독되지 않고 따뜻함으로 혼란을 이겨내는 사람을 꿈꿉니다. 그가 나타나기를.. 내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