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미술에 조예가 깊지 않습니다. 예술적 감각도 크게 가지고 있지 않아 그림을 보는 눈이 없습니다. 그저 비싸다고 하면 좋은 그림인가보다 하는 정도입니다. 그런 저에게도 좋아하는 그림이 몇 편 있습니다. 그중 세 작품입니다.
왼편의 두 작품은 그 유명한 밀레의 “만종”과 “씨 뿌리는 여인들”이고, 오른편의 작품은 고야의 “개”라는 그림입니다. 밀레는 귀족이 아닌 평민의 그림을 많이 그렸다지요. 당시의 미술과 음악은 귀족들의 전유물이었습니다. 음악은 귀족들의 후원을 받아 헌정하는 곡을 만들어 그 앞에서 초연을 하는 것이 보통이었고, 미술은 귀족들의 초상화가 주를 이루던 시대였습니다. 그런 때에 밀레는 민중들의 삶을 그렸습니다. 그 어떤 귀족도 사주지 않을 그림, 소장하지 않을 그림이었을 텐데도 밀레는 그들을 그렸습니다. 그래서 그의 그림 속에는 민중들의 고단함과 일상과 아픔이 묻어납니다.
고야의 개라는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도 그런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모든 것이 다 사라진 듯한 황량한 풍경에 개 한 마리만 덩그러니 그렸더군요. 마치 귀족 중심의 사회에서 외롭고 쓸쓸하고 힘겨운 삶을 보여주려 한 듯 느껴졌습니다. 어쩌면 고야 자신일지도, 또는 그의 다른 그림처럼 동시대의 민중들의 모습일 것입니다.
한참을 보고 있노라면 돌아보게 합니다. “이들이 동시대의 아픈 이들을 품고 그들을 그렸는데, 너는 누구를 품고 무엇을 그리고 있느냐?”고 자문하게 됩니다. 이 시대에 목회자로 사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또다시 생각해봅니다.
저는 미술에 조예가 깊지 않습니다. 예술적 감각도 크게 가지고 있지 않아 그림을 보는 눈이 없습니다. 그저 비싸다고 하면 좋은 그림인가보다 하는 정도입니다. 그런 저에게도 좋아하는 그림이 몇 편 있습니다. 그중 세 작품입니다.
왼편의 두 작품은 그 유명한 밀레의 “만종”과 “씨 뿌리는 여인들”이고, 오른편의 작품은 고야의 “개”라는 그림입니다. 밀레는 귀족이 아닌 평민의 그림을 많이 그렸다지요. 당시의 미술과 음악은 귀족들의 전유물이었습니다. 음악은 귀족들의 후원을 받아 헌정하는 곡을 만들어 그 앞에서 초연을 하는 것이 보통이었고, 미술은 귀족들의 초상화가 주를 이루던 시대였습니다. 그런 때에 밀레는 민중들의 삶을 그렸습니다. 그 어떤 귀족도 사주지 않을 그림, 소장하지 않을 그림이었을 텐데도 밀레는 그들을 그렸습니다. 그래서 그의 그림 속에는 민중들의 고단함과 일상과 아픔이 묻어납니다.
고야의 개라는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도 그런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모든 것이 다 사라진 듯한 황량한 풍경에 개 한 마리만 덩그러니 그렸더군요. 마치 귀족 중심의 사회에서 외롭고 쓸쓸하고 힘겨운 삶을 보여주려 한 듯 느껴졌습니다. 어쩌면 고야 자신일지도, 또는 그의 다른 그림처럼 동시대의 민중들의 모습일 것입니다.
한참을 보고 있노라면 돌아보게 합니다. “이들이 동시대의 아픈 이들을 품고 그들을 그렸는데, 너는 누구를 품고 무엇을 그리고 있느냐?”고 자문하게 됩니다. 이 시대에 목회자로 사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또다시 생각해봅니다.